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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은 강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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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은 강건한가?

여러분 믿음 생활 잘하면 고난이 없을까요? 착한 사람이 왜 고난을 받을까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믿는 사람이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악인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믿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말씀
성경말씀

 

 

 

요한삼서 1장 1-8절

  •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내 영혼은 강건한가?  여러분 믿음 생활 잘하면 고난이 없을까요? 착한 사람이 왜 고난을 받을까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믿는 사람이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악인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믿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1997년 대한민국은 IMF 금융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세상이 참으로 침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살던 가정들이 쓰러지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그만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고통 속에 지냈습니다. 올해 5월부터 병원에 갈 때 마스크를 벗었지만, 얼마나 마스크 때문에 고생했습니까? 마스크는 참으로 한 여름에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국민이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하고 다녔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스크를 하니까 어쩜 그렇게 다 예쁜지... 얼굴 미모 때문에 걱정했던 사람 별로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예쁘고 잘생겨 보였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IMF나 코로나19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위기가 풍랑이 믿음과 관계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으면 모두 비를 맞습니다. 산불과 홍수라는 자연재해를 만났을 때 믿음 좋은 장로님 댁이 쏙 빠질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의 섭리 앞에서 우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위기를 만났을 때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욥을 통해서 우리는 깨닫는 은혜를 받습니다. 욥은 고대의 가장 큰 부자로 젊고 건강했습니다. 많은 자녀들을 낳는 복을 받았고 가정도 행복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욥의 삶에 큰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욥은 31장 24절-25절을 보면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은 형통의 복을 누리면서도 영혼이 강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영혼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혼이란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는 마음과 정신이라는 단어와 같이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내면의 세계를 가리키는 만큼 표현이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영혼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아입니다. 우리 속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가득 찰 수 있는 내면의 실체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찬양과 감사 제사를 드리는 내면의 지성소입니다.

 

시편 42편 1절을 보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어떨 때는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고 어떨 때는 심오한 고통과 갈증과 갈급함을 느끼면서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영혼에 관심 없습니다. 육체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도 중요하긴 하지만 영혼에 대해서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하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그는 젊고 재산이 많고 해마다 재산이 불어납니다. 농사가 다른 사람보다 2-3배 수확이 많습니다. 창고가 모자랄 정도로 넘칩니다. 부자는 창고를 볼 때마다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가 부동산을 소유한개 몇 개이고, 통장의 잔고를 보고 행복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이 많이 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이 사람은 영혼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 영혼아 말을 했지만 정작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잘 먹고 잘살면 영혼이 잘되는 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겠느냐?’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될 인간이 영혼을 무시하고 살면 나중에 어리석은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이 이런 사람 한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믿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죄에서 구원받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처소입니다. 우리 영혼은 우리 삶의 전부를 움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때로 영혼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보면서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니

2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1. 전환문> 그렇다면 가이오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지 1 >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가이오’는 로마서 16장에 바울이 자신의 복음 사역에 도움을 준 사람을 나열하다가 23절에서 ‘교회를 돌보아주는 사람 가이오’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에 ‘가이오’와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개역 성경에는 “식주인 가이오”라고 했습니다. 식주인이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식당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 번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말합니다.

 

1절에 보면 그냥 ‘가이오’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썼고 이어서 1절 끝에는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라고 말합니다. 2절에도, 5절에도, 11절에도 계속해서 ‘사랑하는 자여’라고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 요한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하겠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2. 전환문> 두 번째로 가이오는 또 어떤 사람인가요?

      대지 2 >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2절에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가이오의 신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영혼이 잘 된 사람’입니다. 영혼이 잘 되었다는 말은 죄와 허물도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그 영혼이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건강하고 만족한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그 가이오에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했습니다. ‘범사’는 인생의 삶의 모든 부분, 즉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 학업, 취업, 결혼의 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등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고 그다음 세상 것도 잘되어야 진짜 잘된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지 않았는데 세상 것만 잘되면 어떨까요? 아찔합니다. 그것은 잘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가 잘 심겨 있어야 줄기와 가지도 잘되고 잎사귀도 잘되고 열매도 많이 맺힐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형상을 닮은 영혼을 만드시고 흙으로 육체를 만드신 후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병들고 약해도 영혼이 몸 안에 있으면 산 사람이고, 영혼이 몸에서 떠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영혼 없는 몸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체는 영혼이 살고 있는 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나의 주체입니다. 따라서 육신도 중요하지만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진짜 잘된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 있고, 영혼이 병들어 있는데, 육체만 잘 되었다면 그 사람은 잘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몸은 굶주리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좋은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영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육신이나 육신의 건강,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과 행복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몸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육체에 관심을 쏟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기울이지 않고 영혼이 잘되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으면 내 영혼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 영혼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체크해 보십시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주일에 교회 오는 것이 기다려지고 말씀 듣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갑니다.

 

 

 

 

3. 전환문> 세 번째로 가이오는 또 어떤 사람인가요?

      대지 3 > 진리 안에 말씀대로 선을 행한 사람입니다.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3절에 가이오는 말씀을 배워서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말씀이 가이오의 인격이 되고, 말씀이 가이오의 삶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가이오를 보면서 진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저 사람을 보니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야..

사도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실천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목사인 저에게 가장 기쁜 일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영혼이 잘 됩니다. 말씀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시편 1:2-3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 뿌리를 시냇물에 뻗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합니다.

 

5절~8절을 보면 가이오가 행한 선행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요한은 가이오에게 “가이오야! 네가 나그네 된 우리 순회 전도자들에게 베푼 친절은 정말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구나!” 요한삼서를 기록한 시대는 복음 전파 하다가 붙잡히면 사자 밥이 되거나,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되거나, 온몸에 불 찔러 죽게 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순회 전도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었겠습니까? 그런 자들을 가이오는 영접했고 섬겼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사도 요한에게 가이오가 베풀어 준 사랑에 대해서 증언했습니다.

 

가이오가 베풀어 준 따뜻한 대접은 교회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크게 감명받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거 하러 다니는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며, 진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과 함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그들과 힘을 합쳐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 그렇습니다. 가이오와 같이 기도와 물질로 헌신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전쟁할 때 전선에 나가 싸우는 보병, 포병도 있지만, 이들을 뒤에서 돕는 보급병, 취사병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 사역에도 다양한 포지션이 있습니다. 군대의 포지션에 상관없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 승리는 모두가 함께 기쁨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증거 하는 순회 전도자들이나, 그들을 영접하여 섬긴 가이오나 모두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삶의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데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가이오처럼 진리를 실천하며 생활자의 모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성도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육체도 강건하고 범사에 잘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복을 가지고 가이오와 같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복된 삶 되기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늘의 본문 말씀을 성경의 맥락에서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혼의 잘됨과 범사에 잘됨과 강건함을 마땅히 성도가 받아야 할 복이라고 간주하며 본문을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영과 육에 대한 모든 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본문은 어려움을 겪고, 결핍과 기근을 만난 우리 인생에 필요하며 갈구해야 하는 복을 설명해 주는 귀중한 말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본문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 사랑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가이오가 나그네 된 전도자들을 후히 대접하는 등 항상 진리와 선을 행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탐욕스럽게 자기의 것을 움켜쥐는 자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낯선 나그네에게도 자기의 것을 나누고 베풀며 후히 대접할 줄 아는 겸손하고도 사랑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이오처럼 겸손한 믿음과 선한 마음으로 묵묵히 진리와 사랑을 행하는 자를 기쁨으로 복 내려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가 영육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리에 거하며, 그 진리의 말씀을 나의 삶에 행할 때, 영육의 복은 부수적으로 당연히 따라오게 됨을 오늘 말씀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이오처럼 영육의 강건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축복받는 한분 한분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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